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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June 07, 2010

시인 구보씨의 일일

     @ 2007. 멍석작/달팽이사 살아가는법





시인 구보씨의 일일 / 오규원



- 쇼핑센터에서


나는 사주고 싶네 사랑하는 애인에게 라이너 마리아릴케 같은 스판텍스 브래지어,

사주고 싶네 아폴리네르 같은 팬티 스타킹, 아 소포로 한 점 보내고 싶네

에밀리 디킨슨의 하얀 목덜미 같은 생리대 뉴후리덤



'황혼의 하늘을 따라

종이 평화롭게 三鐘 기도를 올린다

망명적이며 계모 같은

결코 용서하지 않는 풍모로서'

지저분하게 다가서는 일요일

나도 지저분하게

결코 나를 용서하지 않을 풍모로서

라포르그의 시를 베끼고

주일의 복음으로



골드만 같은 여의도

귄터 그라스같은

카프카 같은

쇼핑센터에서



나는 사랑하는 애인에게 사주고 싶네 하이네 같은 쌍방울표 메리야스,

워즈워스 같은 일곱 색 간지러운 삼각팬티, 아 나는 등기 소포로 보내고 싶네

바스카 포파의 '작은상자'에 든 월계관표 콘돔



지친 뒤 늘 혼자

한 잔의 술에 취해 서쪽

하늘의 능선에다 번번이 토악질을

벌겋게 한 뒤 주저앉는 태양이여

안심하라 우리들 인간도 밥에 취해

주저 앉기는 마찬가지 어떻든

쉬는 것은 일요일의 복음이고

취하는 것은 인생의 복음이고

나는 지금 쇼핑 센터를 돌며

오징어 다리를 잔인하도록 유쾌하게 찢어

씹는다 가로등이

주둥이 밑으로 찝찝한

타액을 조금씩 양을 늘려

흘리기 시작할 때




* 이 시는 박태원의 소설인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의 제목을 차용하여 시화한 작품




시출처;화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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